“이게 전시라고?” 괴벨스가 던진 감각 폭탄 ‘겐코-안 03062’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적 작곡가이자 연출가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의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작업 ‘겐코-안 03062’를 오는 8월 10일까지 서울관 MMCA다원공간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다원예술 프로젝트 ‘숲’의 7월 프로그램 일환으로, 7월 14일부터 약 한 달간 진행되고 있다. 괴벨스는 실험적 공연예술의 거장으로, 공간, 소리, 빛, 오브제의 관계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겐코-안 03062’는 작가가 1992년 일본 교토의 겐코안 사원을 방문하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시작된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사원의 동그랗고 네모난 창을 통해 바라본 정원의 이미지가 그의 내면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는 시각적 경험을 청각적·공감각적 체험으로 확장한 설치작업으로 구현됐다. 이번 서울 전시는 이 시리즈의 여섯 번째 버전으로, 베를린(2008), 다름슈타트(2012), 리옹(2014), 모스크바(2017), 보고타(2019)에 이어 장소 특정적 특성을 반영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우편번호 ‘03062’를 제목에 담았다.

 

전시는 25×20×11m 크기의 MMCA다원공간 전체를 활용한 대형 멀티미디어 작업이다. 관객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8채널 사운드, 빛, 어둠, 물결, 진동, 다양한 오브제 등으로 구성된 무대 요소들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전통적인 내러티브나 연기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관객은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 오감으로 작품에 몰입하게 되며, 괴벨스는 이를 ‘사물들의 공연’이라 명명한다. 작품은 관객 각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고, 무형의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이 작업의 철학적 출발점은 19세기 미국 초월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 Thoreau)의 수필집 ‘월든’이다. 소로가 월든 호수 인근 숲에서 2년간 홀로 지내며 자연과 삶을 사색한 기록을 바탕으로, 괴벨스는 감각과 사유, 비언어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 작업에는 또한 존 케이지가 소로의 텍스트를 해체한 ‘빈 단어들’(1974)의 소리, 괴벨스와 로버트 루트먼의 협업 작품 ‘월든’(1998) 등도 포함된다. 여기에 더해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프리카 등지에서 채록한 민족음악 기록, 다양한 문화권의 목소리들이 겹겹이 배치되며, 하나의 다성적 시공간을 형성한다.

 

전시는 언어가 아닌 소리 자체의 질감과 리듬에 집중하게 만든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극작가 하이너 뮐러,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가 음악처럼 얽혀 구성되며, 그 안에서 관객은 의미보다 감각을 우선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괴벨스는 이 작업에 대해 “소로가 새 소리와 기차 소리, 바람 소리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고 들은 태도야말로 예술이 갖춰야 할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소리와 오브제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조화 속에서 감각의 재배치를 시도하고, 관객이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하이너 괴벨스의 몰입적인 작업은 빛과 어둠, 형태와 리듬, 시와 노래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겹쳐지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이번 다원예술 ‘숲’을 통해 인간과 자연, 예술의 새로운 감각적 접점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