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된 해부실습실 그대로, 의대 증원 국립대의 비명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따라 내년도 전국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났으나, 정작 예비 의사들을 가르칠 교육 현장은 유례없는 인프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지역 국립대 의대 관계자들은 급격한 인원 증가를 감당할 강의실과 실습 설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기초의학의 핵심인 해부학 실습의 경우, 수강 인원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하면서 일부 대학은 임시 건물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교육의 질 하락이 우려를 넘어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시설 노후화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경북대 의대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건립된 해부실습실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건물이 너무 낡아 수술 및 실습의 필수 장비인 무영등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환기 시설의 부실이다. 실습용 시신 방부 처리에 쓰이는 포르말린은 1급 발암물질로 철저한 배출이 필수적이지만, 오래된 환기구로는 증기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학생과 교수진의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90여 년 전 설계된 공간에 두 배의 인원을 밀어 넣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습용 시신인 '카데바' 확보 전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전북대 의대 등 국립대들은 종교 재단과 연결된 사립대보다 시신 기증을 받기가 훨씬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2025년 의정 갈등 사태 이후 기증 의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정상적인 수업을 위해 연간 20구 정도가 필요함에도 현재는 10구 미만으로 버텨야 하는 실정이다. 실습 보조 인력인 의료기술직 충원도 제자리걸음이어서, 제주대 등 일부 대학은 늘어난 학생들을 감당하기 위해 오전과 오후로 반을 나누어 '2부제 수업'을 검토하는 고육책까지 짜내고 있다.
이러한 교육 여건 부실은 결국 공인된 평가 기관의 경고로 이어졌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최근 실시한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전북대 의대에 '불인증 유예'라는 잠정 판정을 내렸다. 국립대 중 유일하게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전북대는 증원된 인원을 수용할 강의실 확보 실패와 교수 인력 부족이 결정적인 사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1년간의 보완 기간 이후 진행될 재평가에서도 인증을 받지 못하면, 신입생 모집 정지는 물론 졸업생의 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이 박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문제는 교육 과정뿐만 아니라 졸업 이후의 수련 환경까지 번지고 있다. 늘어난 의대생들이 졸업 후 지역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로 근무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이들을 수용할 당직실이나 급여를 감당할 재정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역 거점 국립대들은 현재의 병원 시설로는 증원된 인력을 수련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 인프라에 대한 고민 없이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할 경우, 결국 지역 의료의 질 자체가 동반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뒤늦게 재정 당국과 협의하여 실습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전임 교수를 확보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예산 지원을 통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고 교수를 채용하는 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할 때 정부의 대책이 너무 안일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당장 내년부터 쏟아질 학생들을 감당해야 하는 대학들은 구체적인 예산 집행 규모와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한 학사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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